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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의의 1. (갈 3장 1-14절)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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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1-12 01:04:40 조회수 108


* 제목 : 십자가의 의의
* 본문 : 갈라디아서 31-14
 
   십자가는 현재 기독교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참혹한 형틀이었습니다. 앗시리아와 페르시아 등에서 사용되었던 십자가는 포로들이나 반란자들의 시체를 못 박아 거리에 걸어 놓음으로서 백성들이 불순종하지 못하도록 위협감을 주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십자가를 로마군이 사용했으며 구약성경도 비슷한 언급을 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에 언급된) 죽일만한 죄를 지은 사람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놓음으로써 하나님께는 저주를 받은 것이며 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21:21,22)
   이처럼 십자가는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셨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세상의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에 예수께서 친히 달리심으로 인간이 당해야 할 가장 고통스러운 아픔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죽음을 위해 십자가를 택하지 않으셔도 되셨습니다. 조금 더 편한 죽음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실 수 있으셨음에도 예수님은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입니다.

1. 동일한 죽음도 느끼는 감정의 차이가 다르다.
   만약 예수님께서 단순하게 죽음을 당하셨다면 죄악에 물든 우리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십자가가 얼마나 무서움의 대상이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앞서 맞은 로마군인의 채찍은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통이었으며, 자신의 체중을 못 박힌 손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 큰 고통인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분의 죽으심이 얼마나 큰 고통을 수반하는 모습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도 육체적으로 튼튼하셨던 분이 아니셨기에 옆에 있는 강도들은 살아 있었으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만큼 연약하셨음에도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로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시고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도록 이끄셔서 그분의 죽으심이 단순하게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를 사랑하심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이끌어 줍니다.
 
2. 십자가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장소이다. (3:13)
   죄의 속성은 죽이는 것이며 고통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2: 13)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죄 가운데 있을 때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 것을 알지 못하나 결국은 그에 따른 대가를 받게 됩니다.
   이런 죄의 해결은 오직 저주의 대상이었던 십자가로 향하게 합니다. 죄에 대한 저주를 받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친히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다는 상징적 모습을 말하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달리심으로써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감수하셨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자가 이런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도 또, 하나님도 모두 이런 아픔을 감수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3.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1-12)
   십자가는 이제 완전하게 변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십자가를 신성하게 여깁니다. 이는 저주의 대상이 오히려 은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속성이십니다. 죄는 고통을 남긴다면 예수님은 은혜를 남기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간 자리는 은혜와 사랑만이 남습니다. 십자가도 예수님이 달리시면서 그 역할이 바뀐 것입니다.
   십자가는 율법으로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사람들의 오만함을 무너뜨렸습니다. 율법(자신의 행위)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스스로에게 의로움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이야기하며 수고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익함과 무능력함을 이야기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를 하나님께 인도할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할 때 진정한 의로움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죄인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에서 의로움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이 오직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 인치심을 받았던 것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오직 믿음을 통해 의인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자녀 이삭을 드릴 때에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하셨던 약속이 있기에 그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 지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습니다.(11:17-19) 이런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눈동자가 아브라함에게 떠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지금의 우리들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단순하게 미래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함께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과거의 일도 미래의 일만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지금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하며 우리의 삶이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는 삶만이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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