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한 감동으로 전하다
주일말씀
- HOME
- 말씀
- 주일말씀
약속 있는 삶 (갈 4:21-32) 2025.11.09
| 작성일 | 2025-11-11 15:07:56 | 조회수 | 79 |
|---|---|---|---|
|
* 제목 : 약속이 있는 삶 * 본문 : 갈라디아서 4장 21-31절 (갈라디아서 강해 7강) * 주제 : 하나님은 자유함과 하늘의 기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얼마 전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26만 장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한국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GPU는 AI의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핵심 칩으로 세계적으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어, 우선 공급을 받는다는 것은 AI 강국으로 갈 수 있는 중요한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명한 한 CEO의 약속이 대한민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약속은 그 약속을 하는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떨까요?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구원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성경에 적혀 있더라도 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성경은 좋은 교훈 책에 불과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약속이었다고 말해줍니다. 바울은 그것을 여러 가지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자유의 삶은 약속으로 이루어졌다. (21-27) 아브라함에게는 이삭과 이스마엘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사라의 종인 하갈을 통해 태어난 아들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 부인인 사라를 통해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90세인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두 예루살렘을 통해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갈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의미하며, 광야에서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과 같은 곳으로 이스라엘이 율법에 종노릇하듯 로마의(갈라디아서가 쓰였던 1세기 당시) 지배를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사라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주님을 믿은 자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이곳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입니다(히 12:22). 이처럼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있었던 것과 아브라함이 모든 나라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창 17:4). 그분은 자기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가 자유자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습니다(요 1:12).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의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조금의 수고가 특별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기의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모두 약속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행위(율법)를 따른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대가를 원하는 것이 아닌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기업의 유산은 약속으로 이루어졌다. (28-31) 이스마엘은 동생 이삭을 조롱했습니다(창 21:9). 그가 어떤 조롱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본문의 문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업에 관련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30). 이스마엘은 먼저 태어난 자로서 자기가 아브라함의 기업을 이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이었으며 이스마엘은 쫓겨남을 당했습니다(30). 이들의 악연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후손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듯이 지금도 믿음이 없는 자들이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가 쓰여 질 당시에도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사회에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나라와 문화를 거스르고 반대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지금은 당시와 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믿음 안에 있으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삶의 방식이 다름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조그마한 실수만 있어도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단이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려는 계략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계략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영영한 불에 들어가나 우리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해방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형수들은 세 번 죽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번은 사형이 구형되었을 때, 두 번째는 사형이 집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될 때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매일이 죽는 날이라고 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거나 교도관이 자기에게 다가올 때나 누군가 자기의 이름을 부를 때 등 모든 순간이 사형을 당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죄의 속박 가운데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가 죽거나, 오늘 주님이 오셔서 마지막이 된다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매일의 삶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게 됩니다. 무엇인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야 마음의 안심을 얻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수고는 여전히 자기에게 마음이 향해 있는 모습입니다. 참된 자유는 우리의 시선이 예수 그리스도께 향해 있는 것입니다. 매일 은혜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그분의 죽으심이 가져다준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구원의 약속을 이루신 그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현실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으나 약속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을 인정하며 그분께 하루의 삶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 하늘의 기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기업은 종국에는 하늘에서 이루어질 것이지만, 지금도 매일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자유함과 하늘의 기업을 이을 존귀한 존재입니다. |
|||
| 이전글 | 교회를 섬기는 것이 왜 힘들까? (갈 4:1-20) 2025.11.02 |
|---|---|
| 다음글 | 아름다운 교회 (살전 1:1-10) 2025.11.16 |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