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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예수님 전하기 (겔 22:1-9) 2026.02.08
| 작성일 | 2026-02-10 01:24:29 | 조회수 |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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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한 달에 한 번 예수님 전하기_주님께로 한 걸음씩 ⚫ 본문 : 에스겔 33장 1-9절 ⚫ 주제 :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의무이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마태복음 28:19-20은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제자의 범위가 어떻게 되느냐입니다. 어떤 사람은 12제자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를 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말은 제자라는 단어와 하나님 자녀라는 단어가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결국 제자라는 말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8:19-20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주님을 믿었을 때부터 주님을 만날 때까지 행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시대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거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복음을 전했던 당시는 더 한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전히 전파되고 믿는 그리스도인은 점점 더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전파는 삶의 중심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믿음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믿음이 좋은데 복음을 전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은 내 안에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으로 그분이 죽으셔야 했던 이유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분을 기억할 때 우리도 그분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1. 그리스도인은 파수꾼이다. 파수꾼의 역할은 알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적군이 쳐들어올 때 우리 군대가 방비하도록 만들며 또한, 백성이 잘 피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대부분의 적은 어두운 밤을 이용하므로 백성은 적군의 동태를 잘 알 수 없습니다. 파수꾼이 나팔을 불어 경고하면 자기 몸을 피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적이 쳐들어왔는데도 파수꾼의 나팔 소리가 없다면 백성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 코코아 농장에서는 한 남자가 죽어가고 있었으나 10대들이 휴대전화로 촬영만 하고 도와주지 않아 논란이 되었습니다. 서양에서는 행인이 도심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있었으나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는 10~20명의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사회심리학은 “방관자 효과”라고 부릅니다. 여러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신고할 것으로 생각하여 자기는 방관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리스도인도 비슷한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전도는 그 일을 할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남의 일로 생각하여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의 본문은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주님은 에스겔에게 백성을 향해 외치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죄에서 돌이키면 그들은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이키지 않음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들이 받을 죄의 대가가 됩니다. 하지만 만약, 에스겔이 외치지 않으므로 백성이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게 되지만, 그들의 피 값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서 찾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이 잊어져서는 안 됩니다. 2. 파수꾼은 진리를 알리는 자이다. 파수꾼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듣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행동의 책임은 당사자가 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역할은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그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가장 좋은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위압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이야기해도 그 방법에 문제가 있으면 사람들은 외면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자기도 전하는 것을(복음) 좋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누구도 그 사람의 이야기에 신빙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 자녀로서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세 번째는 내 역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선포하는 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여전히 기도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다만, 부족했던 부분이 있다면 잘 보완하여 다음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선택한다는 것은 자기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그것을 의무라고 말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4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1) 국방의 의무 2) 납세의 의무 3) 교육의 의무 4) 근로의 의무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의무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 2)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제자 삼는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의무는 억압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내가 소속된 곳에 잘 정착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의무를 다했을 때 삶이 윤택해집니다. 예수님이 양과 염소의 심판을 하실 때 양을 향하여 “내가 주릴 때에 네가 먹을 주셨다(마 25:31-46)”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고통 받는 자를 위해 수고한 것을 주님은 자기를 위해 한 일로 여기십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롬 3:17).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며, 교회로 초청해야 합니다. 그 수고의 대가를 주님을 보상해 주십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최소 한 달에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성도님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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