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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양심은 깨끗해 졌습니까?(히 9:1-28)2020.10.18
작성일 | 2020-10-20 13:30:45 | 조회수 | 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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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당신의 양심은 깨끗해 졌습니까? * 본문 : 히브리서 9장 1-28절 코로나의 시대는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대면예배를 드리는 것이 특별해 보이는 것처럼 성도들이 모이는 것조차 다른 사람들의 눈치는 보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는 우리의 믿음에 도전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볼 뿐만 아니라 우리도 모르게 나태하고 편한 것에 빠지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화 시키고 시대와 자신이 원하는 데로 바꾸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양심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또한 우리의 양심은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단순하게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것이라는 당위성을 내세우고 자신은 안전하다고 스스로 믿는 것에서 벗어나 내 안의 양심이 호소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1. 행위로는 양심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1-10)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에게 쓰여 진 서신서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많은 것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천사, 모세, 아론, 대제사장 등 많은 것들을 언급하면서 이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제사의 예법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해진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렸습니다. 특히 일 년에 세 번은 성전까지 와서 제물을 드릴 정도로 엄격하게 살았습니다. 또한,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제일이 있었습니다. 이날은 모든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날로 일년 중 유일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으며 황소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모든 예식이 마쳐지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속죄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사로써는 섬기는 자의 양심을 온전하게 하지 못하다.(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부의 행위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나가는 것이나, 교회에서 어떤 일을 맡아 행하는 것이 곧, 믿음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는 사람의 단연한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음 안에 있다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행동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내가 하는 행위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양심이 호소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피만이 양심을 깨끗하게 한다. (11-22)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의 피를 통해서도 자신들이 거룩해 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것이 오기 전에 일시적으로 부여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13) 그러나 짐승의 피로는 완전한 양심의 깨끗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오직 완전하시고 온전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만이 깨끗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양심의 깨끗함은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이나 죄에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참되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이 됩니다. 단순히 행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중심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분을 위한 삶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14)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오직 나를 위한 것임을 알기에 그분을 위한 찬양과 섬김의 삶으로 바뀌어가는 것입니다. 3. 모든 양심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된다. (23-28)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전통을 더욱 크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은 더 많은 짐승의 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단번에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한 해결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한 번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올라 가셨으나 두 번째 다시 오심으로 산 자와 죽음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바라고 찾는 자를 위해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오심은 어떤 이들에게는 기쁨과 환희가 되지만, 어떤 자들에게는 고통과 극한의 공포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으나 자신을 속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인의 양심은 본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인정하고 있는 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 만약 우리의 양심이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인식하고 그분께 삶을 맡겼다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피로 거듭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양심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세상의 왕을 더 필요로 한다면 우리의 양심은 거룩함을 입지 못한 자입니다. 수요일 저녁이면 교회 앞을 지나가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차량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통을 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행위일까요? 혹, 자신의 신념에 대한 부분은 아닐까요? 우리의 양심이 깨끗해 졌다면 최소 우리는 각 사람의 인격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의 호소입니다. 당신의 양심은 깨끗한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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