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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내면을 보여주는 것 (렘36:20-26절)
작성일 | 2020-10-30 17:07:03 | 조회수 | 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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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사소하지만, 내면을 보여주는 것 * 본문 : 예레미야 36장 20-26절 저는 주일학교 때 성경책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사람들이 다른 소설책과 같이 성경을 재활용품으로 버리는 것을 보면 비난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저렇게 함부로 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성경을 저는 잘 읽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자동차 뒷좌석에 일주일동안 올려놓습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갈 때 가지고 들어갔다 예배가 끝나면 다시 자동차 뒷좌석으로 들어갑니다. 그에게 있어 성경은 교회에 갈 때 가지고 가는 용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1.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믿음을 나타낸다, (렘 36:20-23) 여호야김은 그의 동생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23:30-34) 여호아하스의 통치는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는데 그에게 남아 있는 행적이란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다는 내용뿐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왕위에 오른 여호야김이지만 그의 행적은 더욱 많은 악행으로 그의 업적을 적어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의 눈에 들어온 가장 큰 악행은 오늘의 본문으로 보여 집니다. 여호야김 당시의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였습니다. 그는 어떤 사연인지 붙잡혀 있어서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적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라고 했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바룩의 이야기를 들은 서기관 엘리사마는 여호야김 왕에게 나아가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고하였습니다. 왕은 모든 고관들이 있는 앞에서 두루마리의 이야기를 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너 쪽을 읽으면 왕은 면도칼로 그것을 베어 화로 불에 던졌습니다. 결국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화로 불에 던져졌습니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땔감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어떻게 준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주일동안 읽지 않고 자동차 뒤에 던져 놓는 것과 그 성경을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 어떤 것이 더 나쁜 행동일까요? 또한,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과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 어떤 것이 더 나쁜 행동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성경 자체에 대한 신비감입니다. 성경은 공포영화에 나오는 신비한 도구가 아닙니다. 성경을 가져다 대면 악한 영이 무서워서 떠는 그런 도구가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책이라는 자체에 영적인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무한한 힘이 존재합니다. 여호야김의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였습니다. 그 또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존재하는 자가 그런 태도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우리의 내면에서 끝없이 그분의 말씀을 갈구하도록 인도하십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태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믿음을 나타낸다. (렘 36:24-26) 여호야김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그 자리에 신하들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들의 태도를 통해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후디는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여호야김은 성경을 찢어 화로 불에 태웠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신하들도 왕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또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의 영이 없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는 그 사람의 내면을 이야기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기에 듣고자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지금의 사람들도 동일한 모습을 보입니다. 말씀예배를 소홀하게 여기고 말씀을 듣는 자체를 싫어합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에 졸거나 딴 생각에 빠지거나 심지어 핸드폰이나 인터넷에 빠져 있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왕의 신하들이 했던 태도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신하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왕의 행동에 대한 환호를 보냈습니다. 말씀 앞에 서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그 사람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점점 기독교는 이성화되고 있습니다. 지식의 동의가 믿음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믿음 안에 있는 것처럼 공식화되고 있습니다. 은혜 없는 섬김이 구원의 행위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사소하게 나타나는 행동에서 보여 집니다. 이것은 타고난 인격적인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떠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능력의 영역이지만, 하고 안하고는 태도의 영역이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려움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이 있다면 그의 태도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믿음의 태도가 나타납니다. 사소하지만, 내면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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