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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에너지-사랑 (롬 5:1-11) 2020.11.08
작성일 | 2020-11-11 14:09:42 | 조회수 | 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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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오늘을 사는 에너지 ‘사랑’ * 본문 : 로마서 5장 1-11절 나이가 들면 남자들이 드라마에 빠지고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는 것처럼 저에게 성찬예배는 점점 감정의 변화가 많아지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메말라 가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 져가는 것에 감사가 됩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시간이 참 오래 걸렸습니다. 물론 그분을 사랑하지 않거나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정의를 감정에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울림이 없으면 사랑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기에 가식적인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신가요?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얼마나 고백하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아내나 자녀들에게 ‘사랑한다’라고 자주 고백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으로 아무리 사랑을 해도 입술로 고백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단, 가족뿐 아니라 성도님들 사이에서도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이 많을 때 우리는 더욱 가까워져가고 교회가 하나 됨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잘 표현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본질”을 잘 보여주신 분입니다. 성도님은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을 한 단어,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신다면 어떻게 이야기하실 수 있으십니까? 주님은 사랑을 ‘희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허울뿐인 것이며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자신을 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8) 사랑을 확실하게 확인해 보여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주시는 희생을 통해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행동으로 또는 수치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또는 수치적으로 어떻게 나타내 보이시고 계십니까? 1. 사랑이 있는 곳에 소망(희망)이 있다. (2-5) 희망은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오늘 열심히 일함으로 연말에 월급을 받을 희망, 오늘 열심히 공부함으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희망, 오늘 열심히 운동함으로 건강하게 장수할 것에 대한 희망. 이처럼 희망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그런데 모든 희망이 좋은 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고, 열심히 운동했지만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지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2)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오늘을 사는 에너지가 됩니다. 비록 환난이 있어도 인내를 만들어 갈 수 있고, 그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4)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희망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연약하고 나약한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에너지가 부족한 것입니다. 2. 사랑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9-10) 하나님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계십니다. 한 쪽에는 사랑을 한 쪽에는 진노의 칼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 칼에 심판을 받게 되어져 있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진노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의 모습이 됩니다. 세상은 지금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공룡이나, 거대한 능력의 존재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한다면 우리는 인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존재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 몰고 많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스운가요? 그런데 그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고통이 세계를 지배하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직접 세상을 심판하신다면 어떤 일이 있을까요?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친히 십자가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그분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분 안에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모르고 있는 이 놀라운 진실 속에서 우리는 믿음 안에 누리는 기쁨이 오늘도 충만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어떤 분이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해 주셨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꺾어 가지고 가지만,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에게 물을 줍니다. (?)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님과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님의 옆에 있어 주려고 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사랑한다면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누군가는 소망을 누군가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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