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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그 변화의 시작 (딛 3:1-9) 20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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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11-23 15:26:23 조회수 574



* 제목 : 아름다움, 그 변화의 시작
* 본문 : 디도서 31-9
 
   ‘법의학이라는 분야를 아시나요? 법의학은 의학을 기초로 법률상의 문제를 연구하고 해석하며 감정하는 응용 의학의 한 분야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죽은 사람을 해부하여 그 속에 남아 있는 진실을 찾는 것입니다. 미국의 드라마에서는 이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자주 방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검법남녀나 싸인등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발달된 분야가 아니라서 우리나라의 법의학자는 현재 7명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법의학자 2명과(여성)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에게 날마다 사람을 해부하는 일이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들은 산 사람이 무섭지 죽은 사람은 무섭지 않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무서울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떠난 몸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죽은 자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산 자가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은 끊임없이 죄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존재들보다도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가 사람입니다. 동물은 본능에 의해 살인을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 때문에 살인을 하는 존재들입니다. 때문에 어떤 것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1. 아름다움을 위한 변화의 시작 (3-7)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도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레데는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지중해에 있는 섬입니다. 그런데 이 섬에 대한 특징을 바울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1:12) 우리는 이 말에서 그레데 사람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지를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거짓말이 자연스럽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레데인 같다라는 말은 비난의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사람 사랑하심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존재들에게 자신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너무도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레데인들의 행위에 관심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행위로는 누구도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선한 행위를 나타낼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 곧, 성령님을 통한 새롭게 하심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중생은 팔링게네시아라는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다시와 출생하다의 합성어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말씀하신 거듭나다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레데의 성도들은 거듭난 것입니다. 그들의 옛 모습은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다시 태어남으로써 성령 안에서 새로운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레데인들이 아름다운 삶으로 전환되는 삶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2. 아름다움으로의 변화 (1-2, 8-11)
   그리스(헬라인)의 특징은 끊임없는 논쟁입니다. 이들에게서 민주주의가 태동된 것도 그들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에 맹목적인 맹신을 하기 보다는 지속적인 질문과 의문을 나타냄으로써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 즐거움을 갖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잘못된 모습이 되면 비방과 다툼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레데인 성도들에게도 바울은 이와 같은 말을 던져줍니다. “아무도 비방하지 말고 다투지 말며(2)” 이것은 그들의 일생생활을 바꾸는 새로운 교훈이 되었습니다. 쉽게 바뀌거나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유교사상에 물든 우리나라가 제사를 지내는 것을 쉽게 바꿀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도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 사람들은 바울의 교훈을 따랐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 죄악된 삶에서 벗어난 자들이라면 모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살전 2:13)
   두 번째 이들의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복음전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 스스로가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 의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선포했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믿음 참 대상인 것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선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것이 아름다우며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8)
 
   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아름답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아름답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보시는 분이 우리를 아름답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곧, 그분을 마음의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그의 인생이 아름다워져 갑니다. 그것은 나의 시선과 마음이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거칠고 척박한 세상에서 의의 나라의 백성이 됨으로서 하나님의 시선을 가진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입은 자는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더 이상 더럽고 추악한 삶이 싫기에 새로운 자로써의 삶으로 전환되어져 갑니다. 변할 수 없었던 죄성에서 벗어남으로서 새롭고 빛난 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중생을 이루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 아름다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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