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한 감동으로 전하다
주일말씀
- HOME
- 말씀
- 주일말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 (벧전 3:8-22) 2020.08.23
| 작성일 | 2020-08-24 15:39:04 | 조회수 | 1254 |
|---|---|---|---|
|
* 제목 :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 (베드로전서 강해 7강) *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8-22절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내면을 대변해 줍니다. 자신을 잘 보이려고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어느 시점이 되면 그 사람의 중심이 보이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마지막까지 숨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면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득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말을 합니다. 내면이 세상의 것으로 가득한 사람은 세상의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영적 삶을 알게 합니다. 베드로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 나의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할 것을 예비하라고 합니다. 대답할 것을 예비하는 것은, 어떤 한 문장을 외우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내면이 소망에 관한 것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1. 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3-22절) 기독교라는 탈을 쓴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기독교인들을 핍박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사단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도 합니다.(고후 11:14) 다가오는 시대에는 더욱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런 모습을 통해 명확해 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어떤 사람이 아닌지가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명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살리심을 받아 모든 이들의 왕으로 등극하셨습니다.(18) 그의 생애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선포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그가 노아의 때에도 노아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당시 노아의 메시지를 들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옥(지옥)에 갇혀 있습니다.(19-20)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노아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아도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구원을 얻은 자는 단 8명에 불과했습니다.(20) 노아의 복음 사역은 철저하게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몫이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신다고..” 우리도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신다고..” 2. 나는 악을 싫어합니다. (8-12)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말씀은 “순종의 미학”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동일한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가는 것이 마땅한데 순종의 길의 중심은 악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죄악이 싫으며 그곳에서 떠나기를 원합니다. 선한 양심을 갖길 원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일을 이루기를 원합니다.(16)“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성품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 혼자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닙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다른 이들과 같은 마음을 품는 존재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하여 함께 아파하는 동정의 마음을 갖는 존재들입니다. 세상에 대하여는 악으로 악을 갚는 자가 아니며 욕을 욕으로 갚는 자가 아닙니다.(8,9)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싸우는 것은 아직 율법의 썩어질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14), 하나님께서 의인을 향하시는 그분의 얼굴을 두려워(12,15)하는 자입니다. 8절의 시작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결론 또는 목표”를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고난의 삶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정리된 내용입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겠지만, 주님께서 항상 구하여 주십니다. 의인의 기도를 언제나 들어 주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함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시 34:17-18) 그래서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죄악된 삶이 싫어요.” 극기 훈련이나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뛰다보면 뛰는 숫자에 맞추어 구호를 붙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에는 아무런 번호를 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마지막 구호를 붙이는 사람이 반듯이 있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다시 처음부터 체조를 해야 합니다. 지금의 코로나 문제를 어떤 사람이 이렇게 빗대었습니다. 우리는 나름 열심히 규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사람으로 인해 같은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비난하기 이전에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합니다. “나 하나 괜찮겠지!”라는 생각에서 술친구들을 만나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모습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충분히 비난받을 만한 일입니다. 시대에 따라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는 시대이지만, 우리는 당당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악을 싫어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는 나의 마음이 나의 행동이 이에 수반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소망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
|||
| 첨부파일 | |||
| 이전글 | 부르심의 이유 (벧전 2:11-25) 2020.08.09 -베드로전서 강해 5강 |
|---|---|
| 다음글 |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벧전 4:1-11절) 2020.08.30 |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