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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기다림 (히 9:16-28) 2024.09.01
작성일 | 2024-09-03 23:10:20 | 조회수 | 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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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기다림 * 본문 : 히브리서 9장 16-28절 (히브리서 강해 13강) * 주제 : 믿음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의 오심을 소망한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따르는 경향이 많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을 따르거나 따르는 것을 지속하기 어려워합니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으나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11:1). 진리 곧 변하지 않은 내용이라는 정확한 확신이 지금의 보이는 현실을 이기게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삶의 질이 다르게 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을 믿거나 보이는 것에 쉽게 좌우되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그의 감정의 기복이 심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지난주와 비슷한 부분을 서술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의 본문도 동일할 내용을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가 많은 지면을 사용해 비슷한 내용을 길게 서술하는 이유는 그만큼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유전과 문화에 대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한 부분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보이는 전통과 문화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1. 보이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주나 완전한 것이 아니다. (16-22) 유대인들에게 제정된 율법은 약 BC 1,500년 때입니다. 1세기에 히브리서가 쓰였기에 율법을 지켜온 기간도 약 1,500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이어온 그들의 문화를 버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들은 애굽에서 떠나올 때부터 유월절을 지켰습니다(출 12:1). 특히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 준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유월절)를 했던 사람은 모두 살았으나 그렇지 않은 가족의 장자는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고 물질을 드려야 하며 시간을 사용해야 했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고 확인할 수 있는 행위였습니다. 이런 행위는 그들을 안심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행위에 숨어 있는 참 진리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은 이곳에서의 삶을 마감하게 합니다.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얻었던 물질이나 명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의 삶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드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어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됩니다. 죽음의 값은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있습니다(22). 이런 가치를 유대인들은 동물을 통해 알아야 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위해 죽어야 했던 어린 양의 모습에서 죽음과 생명이 교환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으나, 그들은 자기의 행위로 인해 자기가 얻을 유익만을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율법으로 돌아가게 된 이유였습니다. 이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더 중요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결과였습니다. 2. 보이지 않는 것은 기다림을 주나 진리 안에 거하게 한다. (23-28) 땅에 속한 것도 짐승의 죽음을 통해 죄를 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하늘에 속한 것은 더욱 좋은 제물이 드려져야 했습니다(23). 곧,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같이 죄가 없는 존재만이 하늘에 있는 것을 정결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 땅에 속한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하늘에 오르심으로 완전한 구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24). 그분의 죽으심은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으며 단번에 완성하신 완벽한 제물이었습니다(25).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사하기 위해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다면(26), 두 번째로 자기를 찾는 자를 위해 다시 오시게 됩니다(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불변의 진리라면 세상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27). 예수 그리스도는 이때를 위해 다시 세상에 오시게 됩니다. 심판이 두려운 자들은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나, 그분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은 가장 큰 은혜의 시간이 됩니다. 사랑하는 신랑을 만나게 된 신부의 기쁨과 같이 넘치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의 굴레 안에서 부딪힘과 고통의 연속 가운데 살다 최후에는 심판이라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은 삶에 소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과 우리가 드리는 기도, 우리가 겪는 경험들은 그분을 점점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귀로 듣는 것을 넘어 눈으로 보는 것 같은 확신으로 나아가게 합니다(욥 42:5).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더욱 정확하게 알게 되며 삶의 방향이 정확하게 정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분의 오심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주님의 오심을 소망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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