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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이기심의 차이 (히 9:1-15) 2024.08.25
| 작성일 | 2024-08-26 17:58:22 | 조회수 | 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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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믿음과 이기심의 차이 * 본문 : 히브리서 9장 1-15절 (히브리서 강해 12강) * 주제 :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눈이 향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어린 아이들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리어 오게 되었다면 성인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교회에 다니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중심은 대부분 동일합니다.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음이 힘든 일이 있거나 건강에 어려움이 있거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도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를 통해 교회를 다니게 되지만, 결국 믿음은 자기에게서 하나님께로 넘어갈 때 발생하게 됩니다. 교회는 성경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성경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분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인간의 타락으로 해결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는 놀라운 은혜를 깨달음으로 나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중심이 됩니다. 이들은 종교인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율법을 통해 믿음과 이기심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기심 (1-10) 성막은 하늘의 모형이며 비유였습니다. 성막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섬기는 것은 제사장만이 가능했으며 제사장들은 레위지파 중 아론의 자녀만이 가능한 출생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능력도 권력도 힘도 소용없이 오직 아론의 자손으로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 년 중 속죄일이라는 오직 한 날만이 가능했으며 자기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 수소를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레 15:3-6). 성막은 하나님을 섬기는 곳으로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께 집중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집중했습니다. 자기들만이 가능했던 섬김은 영적 우월주의가 되었으며 백성 또한 번제를 드리기만 하면 자기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짐승의 제물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아는 도구에 불과했으나, 그들은 자기의 행위가 충분히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셔야 하는 도구도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집중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에 집중한 것입니다. 이 시대의 종교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종교인은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입니다. 이기심은 섬김조차도 자기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게 합니다. 수고를 알아주지 않으면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일하는 것은 당연하나 내가 일하는 것은 큰일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2. 율법에서 벗어난 믿음 (11-15) 이 땅의 모형으로 보여주었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양이나 소의 죽음으로는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없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줄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혔던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도 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당연히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죽은 양심을 살려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에서 벗어난 믿음이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됩니다.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 죄가 사해졌듯이 그분이 없으시다면 결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십니다. 게리 토마스는 ‘부부사랑학교‘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두려움에서 순종하며, 두 번째로 사랑 때문에 순종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으심으로 순종”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왜 섬김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믿는 순간 우리 안에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연습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성막은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께 갈 수 없으며 그분의 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행위가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동일한 유대인이었지만 다윗은 은혜의 하나님을 알았으며 오직 그분께 집중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내가 아닌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이유로 교회에 참여했든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인의 손에서 떨어지는 고기에 관심을 두기보다 주인의 사랑에 관심을 두는 강아지는 주인의 큰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주실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집중한다면 나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을 얻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곧 영생과 그분을 기쁨으로 섬기는 매일의 삶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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