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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의 선택 (요 8:31-59) 2023.04..09
작성일 | 2023-04-10 18:39:31 | 조회수 | 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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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더 나은 삶의 선택 * 본문 : 요한복음 8장 31-59절 (요한복음 강해 25강) * 주제 : 내 삶의 최고의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햄릿증후군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쉬운 말로 하면 선택 장애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소비심리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장애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라도 많은 사람이 결정하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한 가지를 결정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과 잘못된 선택으로 미칠 영향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하루의 삶을 살아갑니다. 직장을 나가는 이유는 육체적인 피곤보다 받아야 할 돈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가는 이유는 오늘 출석하는 것이 하루를 쉬는 것보다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이면에는 더 좋은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선민사상은 자기들만이 거룩한 백성(신 7:6/성민)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32) 그리고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셨습니다.(요 14:6) 1. 더 나은 선택은 자유를 준다. (31-47)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3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많은 사람이 믿었다(30)”는 내용이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인정했을 뿐 예수님을 믿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참 제자의 길(믿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말에 거하는 것입니다. ‘거하다’는 ‘메노’라는 헬라어로 “특정한 장소에 머무르다”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텐트, 장막 같은 곳에 함께 머무르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믿음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로고스)에 대하여 요한복음을 시작할 때 살펴보았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1:1,14) 결국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너희가 만일 진리를 안다면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고 하셨습니다.(32) 그러나 여전히 유대인은 자기의 태생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누구에게도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죄의 종으로서 죄에 종속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죄의 사슬로 고통과 아픔이 이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이들은 여전히 자기의 선택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2. 더 나은 선택은 영원한 기업을 준다. (48-59) 예수님은 “내 말을 지키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키다’는 것은 따르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은 감정의 변화나 기분의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삶을 바꾸어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들의 삶은 자기에게서 예수님께서 바뀌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예수님은 영생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생은 단순하게 영원히 사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영생은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것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받는 기업을 잇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롬 8:17) 여전히 자기의 선택을 바꿀 마음이 없는 유대인은 오히려 예수님이 귀신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불변의 진리인데 영원히 산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정신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52) 거기에다 BC 1,000년대를 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은 유대인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습니다.(58)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선택을 했습니다.(59)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이(히 1:2)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부터 그를 지켜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요한은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1장에서부터 지속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얻는 권리를 얻게 됩니다.(1:12) 영원이라는 세계뿐 아니라 예수께서 누리시는 기업을 우리도 동일하게 얻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하늘의 기업은 이 땅의 소멸할 것에 관심을 끄게 만듭니다. 1년간 지속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자유를 얻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투쟁입니다. 더 많은 희생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자유는 인류에게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자유라면 우리의 보이지 않은 영의 세계를 위한 자유는 얼마나 중요할까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현재 삶을 좌우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악한 영의 세계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는 매일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속에 참다운 자유가 있습니다. 죄와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 의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고후 9:10) 우리 안에서 보호받는 양들이 우리 밖의 풀을 갈망하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세상의 것을 갈망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의 삶이 선택의 삶입니다. 만약 우리가 선택의 갈등이 없고 자연스럽게 말씀 안에 거한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하늘의 기업을 얻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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